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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번역 인프라’ 구축은 국가 의무

작성자

관리자

날 짜

2011-04-08

파 일

조회수

1405


‘번역 인프라’ 구축은 국가 의무

중앙SUNDAY 사회에디터스탠퍼드대 교수 이언 모리스가 지은 『지금까지는 서구가 지배하는 이유(Why the West Rules-For Now)』는 수천 년에 걸친 서구와 중국의 경쟁을 다루고 있다. 역사학·고고학·고전학자인 모리스 교수에겐 지리가 가장 결정적인 흥망 요인이다. 문화·종교·윤리 같은 소프트 파워 차원의 변수들은 낄 자리가 없다.

 국가와 문명의 부침에는 그러나 번역이라는 ‘미시적인’ 문화 변수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슬람 세계와 서구 세계의 부상 배경에는 외국어 문헌의 소화가 있다. 20, 21세기 동아시아의 부상도 언어를 매개로 서구 문명을 흡수했기에 가능했다.

 언어·번역은 국가 경쟁력이다. 문명의 미래를 좌우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번역 인프라는 취약하다. 수십 년 경력의 전직 외교관의 증언에 따르면 각 분야를 대표해 국제회의에 참가하는 대한민국 대표들은 수많은 실수를 한다. 언론에 노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노출이 돼도 바쁜 세상 속 다른 뜨거운 사건과 논란 속에 묻혀버린다.

 중앙SUNDAY에 영어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재미 영어 전문가 조화유씨는 문화체육관광부에 공용 영문 감수팀을 신설해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그의 지론은 국격을 떨어뜨리는 엉터리 영어를 꼭 추방하는 것이다. 엉터리 영어는 국격의 문제이기 전에 국익의 문제다. 번역 문제로 국격·국익에 손상을 입지 않으려면 번역청의 설립도 고려할 만하다. ‘작은 정부’를 선호하는 입장에서는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 그렇지만 엉터리 영어 추방, 우리 고전을 외국어로 번역해 세계에 알리는 일, 아직도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동서고금의 주요 저작들을 번역하는 일 등 번역청이 총괄적으로 해야 할 일은 이미 태산같이 쌓여 있다.

 번역청은 번역가를 양성하고 번역회사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작업에도 착수해야 한다. 번역서비스 시장은 수천억원 규모이지만 검증·공인되지 않은 번역회사들이 많다는 게 문제다. 산업화 초기 과정에서는 외국과 거래를 트고 계약을 체결하는 것만도 큰 이익이 됐다. 계약의 독소조항 같은 것을 따지는 것은 배부른 소리였다. 영어 미숙으로 외국의 사업 파트너에게 웃음거리가 되거나 손해를 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기업의 국제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급격히 향상됐지만 문제는 중소기업이다. 많은 중소기업이 번역 능력이 있는 인재를 채용하기가 어려워 번역회사 서비스에 의존한다. 번역회사들은 주로 외부 인력을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고용한다. 사업 여건상 번역 문서에 원어민의 감수를 거치는 것도 쉽지 않다. 외국어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번역가가 될 수 없다. 번역가로서 별도의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번역회사는 번역가를 훈련할 여력이 없다.

 번역가들의 작업에 필요한 한영사전과 한영·영한 전문용어사전을 만드는 일에도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영어 학습과 활용에서 말하기·글쓰기가 부쩍 강조되는 시대이지만 이에 필요한 한영사전의 수준은 미흡하다. 우리가 영어를 학습하는 것은 각기 전문 분야에서 영어를 사용하기 위해서지만 전문용어사전 출간은 사회부문이 감당하기 어렵다. 그나마 수요가 있는 영어가 아닌 다른 외국어로는 사전 출간이 더더욱 어렵다.

 번역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인정한다면 번역에 필요한 사전이라는 인프라는 당연히 국가가 나서서 구축해야 한다. 번역청의 설립이 어렵다면 사전 제작을 국책 사업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언 모리스 교수는 변화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변화의 원인은 보다 쉽고, 보다 이익이 많이 남고, 보다 안전하게 일하려는 게으르고, 욕심 많고, 겁에 질린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대부분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변화의 주역들도 모르는 것을 아는 정부가 리더십이 있는 정부다. 우리 사회 ‘번역 문제’를 해결할 정부의 리더십을 기대해본다.
<중앙일보 201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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