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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번역물 연재 시리즈 (24)/ 일본의 전통문화 (24)/ 제 24장 일본의 젊은이

작성자

김번웅

날 짜

2017-10-16

파 일

조회수

55

제24장 일본의 젊은이
Japanese Young People...카도와키 아츠시(門脇厚司)

1853년 6월 미국의 사령장관 (司令長官)페리가 군함 네척을 끌고 우라카(浦賀))에 래항하여,에도막부에 개국을 요청했다
마침 이해는 에도막부의 초대 장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를 연지 꼭 250년째에 해당 한다
그리고 이해를 경계로 일본의 사회는 근대사회의 건설을 향해 크게 변모를 달성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모와 개혁의 중요한 추진 세력이 된 것이 시대를 통해 거의 젊은이 들이 였다
1854년, 일본은 개국을 멈출수 없을 지경에 이르나, 이후 1868년의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달성하기 위하여 활략한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페리가 래항 한 1853년에 20세 전후라고 하는
젊은이였다
훗날 유신의 3걸(傑)이라 칭해진 사이고 타카모리(西鄕隆盛),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키도 다카요시(木戶孝允)은 각각 26세, 23세, 21세라고 하는 청년 이었다
또 유신(維新)을 위해 생명을 걸고 활략한 기타의; 인물 예를 들면,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는 개국 하던 때 겨우 19세, 타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는 갓 15세가 되었을 뿐이다
메이지 유신이후 일본은 구마 선진 제국의 지식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취입하여 근대국가로서 발전하고 국력을 단련하는 것을 국가의 최대 목표로서 정하고 추진하여 왔으며
근대국가의 발전을 달성하여 온 것도 많은 젊은이들의 힘 이였다
근대국가로서 정착한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해, 훗날 일본의 초대 문부대신이 되는 모리 아리노리(森有,禮 )는 약관 22세였다
또 산업의 발전에 공헌하고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체를 만든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彌太郞)와 야스타 센지로(安田善次郞)는 각각 35세와 31세였다
그리고 현재 일본의 명문 사학이 되어 있는 학교를 창설한 후쿠자와 유키치(福 澤諭吉)와 니지마 유주루(新島?)는 각각 35세와 26세였다
이와 같은 예는 거의 무수하게 열거 할수 있다
그런 정도로 근대 일본의 건설에 공헌한 젊은이의 수는 많았다고 하는 것이다
근대화 추진을 이룩한 젊은이의 역할은 거대한 것이 였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일본의 젊은이들은 사회의 발전에 힘을 발휘,할수 있게 되었는가
몇 개의 원인을 열거하느것이 가능하나 지금은 객관적인 사회적 요인과주체적인 요인을한가지씩 들어 보자
객관적적인 사회적 요인으로서는 말할필요도 없이 일본이 단시간내에
선진 제국을 쫓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피 할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점이다 서구 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력과 부를 내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일본은 정치 제도나 법제도나 교육제도는 물론 과학 기술, 사상, 문화, 그리고 의식주 전 분야에 걸친 생활양식까지
서구 제국의 그것을 배워, 일본의 토양에 뿌리 내리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리 하기 위해서는 바이타리와 호기심과 가소성(可塑性)에 풍부한 젊은이의 힘은 필요 불가결한 것이 였다
이러한 국가의 요청에 젊은이 들이 적극적으로 응답한 주체적인 요인은 무었 일까 소위 입신출세를 이루려는 가치관, 내지 윤리에의 코미트멘트가 그것이다
메이지 유신과 함께 신분제도는 폐지되고 직업과 거주지의 선택의 자유가 보장 되고, 병행해서 교육제도가 정비되게 되었다
이리하여 젊은이의 관심과 에너지는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지위와 명예를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입신출세의 경쟁에 집중되게 되었다
가난한 집안의 자제가 학업에 정진 하며,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몸에 익혀 그것을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 활략 하며,보수로서는 확실한 지위가 얻어 진다고 하는 예는 전국 어디에도 곳에서도 보여지는 일이였다
그리한 젊은이들이 모두가 읽은 책이 독립 자영(自)을권하는 “사뮤엘 스마일스”의Self help(書局立地篇) 이고,
후쿠자와 유키치 의 “학문의 권유/카쿠몬노 스스메”였다:
이러한 책에 고무되어 일본의 젊은이들도 또 젊은 벤쟈민 후랑크린 처럼 근면과 극기를 자기의 것으로 한 것이다
젊은이들이 체득한 이런 근면과 향상심이 그대로 근대 일본의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그런 의미로 프로테스탄티즘 의 윤리가 서구 자본주의 사회를 형성하는 추진력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유명한 막스웨버(Max Weber)의 연구에 대비해서 말하면,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입신출세 주의라고 하는 세속윤리가 근대화의 추진력이 되었다고 얘기해도 좋다
이와 같은 출세 경쟁이 근년엔 수험지옥 이라고 얘기 해질 정도로 가열화해서
청소년의 정신 형성을 스포일화 하게까지 되었지만 일본사회의 급속한 발전과 인간형성에 기여한 입신출세주의 의의는 충분히 평가 되어야만 한다
물론 일본의 젊은이 전체가 국가의 요청에 유유락락(唯唯諾諾)하게 헌신해 왔던 건 아니다 그중에는 보다 좋은 사회와 인간의 존재상태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개인을 중시하는 사상이나
사회주의 적인 사상을 인식하고 그의 도입에 진력하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어떤 때는 전쟁에 반대하여 그 때문에 젊은 생명을 접게되는 양심적인 젊은이가 없었던건 아니다,
세계 제2차대전 이전의 일본에서 그런 사상이나 운동이 금지되어 억압된 적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하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계속되어온 명맥은 제2차 대전후 크게 개화하게 되었다
전후의 일본은 자유와 평화를 이념으로 하여 재출발하게 되었지만 신생 일본의 건설에 공헌한 것은 시 젊은이들의 힘이였다

이와 같은 근대 일본의 역사를 되돌아 보게 되면, 일본에서 “젊은이라 하는것”이 가치 있는 것이란 것을 잘 이해 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일본의 젊은이들의 표정은 밝지 못하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활력이 저하되고 있다고 말하는 게 적지 않다
경제대국이라 불리면서, 성숙사회에 이르렀다고 여겨지는 사회 속에서 그것만큼 젊은이들의 힘을 발휘하기 어렵게 되었다 라고 생각되어 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일본이 처해 있는 경제적, 국제적 상황은 결코 탄치만은 않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또다시 힘을 발휘하게 되는 도 그다지 멀리 있는게 아니라고여겨진다

2017 10월16 (Mon)
Alo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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